도각사 소식

국회 생명사다리 상담활동

국회 생명사다리
국회 생명사다리 포스터

 

 

2013년 4월 8일 국회 생명사다리 상담센터가 국회 내부에 설치되었습니다.

예전부터 도각사 스님들께서 상담활동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한 신도분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국회TV 자막에 스님들이 하고 싶어하시던 일이 나온것 같습니다.”

보만스님이 전화 문의를 하니 당시 주무관님이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주셨고 그때부터 국회와의 인연이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2018년 현재 상담인원 30팀 중 보만스님, 월가스님이 유일한 스님으로 월 1회 (매월 넷째주 화요일 12:00 ~ 15:00) 상담활동을 진행중입니다.

국회 생명사다리 상담센터 080-788-0479

교도소 정기법회 안내

도각사에서는 2013년부터 청송교도소에 정기법회를 시작하였으며, 상주교도소가 문을 연 이후 인연이 되어 현재 매월 2곳의 교도소에 법회를 들어가고 있습니다. 청송교도소는 이각큰스님께서 직접 법문을 해주시고 있고, 상주교도소는 제자스님들이 법문을 진행합니다. 매년 8월과 1,2월은 하계 동계 방학으로 법회가 쉬며, 나머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회가 열립니다.

교도소 법회는 누구나 함께 참석하셔서 법회를 참관하실 수 있으며, 보안조치 관계로 최소 일주일 전 미리 연락을 주셔야 출입이 용이합니다. 문의사항은 네이버 불교카페 혜안, 사회봉사단 지심회 총무부 (054-541-2057) 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법회일시

  • 상주교도소 

매월 첫째주 수요일 오후 3:00 – 4:00 강당법회

  • 청송교도소 

매월 셋째주 수요일 오후 1:30 – 2:30 교리반 / 오후 3:00 – 4:00 이각큰스님 강당법회

*매년 1월, 2월은 동계방학, 8월은 하계방학으로 교도소 법회는 없습니다.

 

후원안내

매월 약 300여명의 재소자들을 위한 떡이 지심회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어린 후원이 상주교도소, 청송교도소의 수형자에게 전달됩니다.

후원계좌: 농협 301-0202-8918-11 사회봉사단 지심회
문의: 사회봉사단 지심회 총무부 (054-541-2057)

 

 

불교 교리강좌 안내

일시

도각사 일정 (구글캘린더)

 

기초반

누구나 참석 가능
총 20강 (1년 과정)
매월 두번째/네번째 토요일 2시 ~ 4시

중급반

기초반 이수자 참석가능
총 20강 (1년 과정)
매월 두번째/네번째 토요일 4시 ~ 6시

큰스님 유마경 법회

중급반 이수자 참석가능
 매월 마지막 토요일 8시

 

정리해보면 처음 오시는 분들은 초급반을 수강하시면 되구요. 열심히 법회에 참석하신 분들은 다음 해 부처님 오신날에 수료증을 받게 되시며 그 후에 중급반에 들어오실 수 있게 됩니다. 더 나중에는 유마경반에도 참여하실 수 있게 되겠죠? 문의사항은 네이버 불교카페 혜안, 도각사 종무소(054-541-2057)로 하시면 됩니다.

교통편

상주터미널, 점촌터미널에서 택시로 20분 소요됩니다. 다만 택시비가 나오는 편이니 터미널에 차량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과 시간을 맞추실 수도 있습니다. 상단의 구글캘린더를 참고하시면 도각사의 일정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계간 지심] 10분 사유 – 몸을 네 가지로 나누는 사유

명상은 모든 생각이 고요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명상은 올바른 사유를 통해 가능합니다.
사유는 명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불경은 명상으로 통하는 사유법이 가득합니다.
명상에 이르는 불경 속 10분 간의 사유법을 소개합니다.

 

현명한 왕이 지혜로운 수행자에게 묻습니다.
“내가 없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지혜로운 수행자가 다시 묻습니다.
“왕이시여, 왕께서는 이곳에 오실 때 무엇을 타고 오셨습니까?”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왕께서 타고 오신 수레에 대해 묻겠습니다. 바퀴가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바퀴 살이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바퀴와 바퀴를 연결하는 축이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말과 수레를 연결하는 가죽 끈이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수레에서 수레 아닌 것을 모두 빼면 무엇이 남습니까?”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수레입니까?”

우리의 몸을 이와 같이 사유해보겠습니다.
몸의 단단한 부분, 뼈, 손톱, 이빨, 머리카락 등은 흙으로 돌아가고,
피, 눈물, 오줌, 골수 등은 물로 돌아가고,체온은 따뜻한 기운으로 돌아가고,
몸 속에 남아있던 숨은 허공으로 돌아갑니다.
우리의 몸은 이렇게 흙과 물과 따뜻함과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 이제 우리의 몸에서 몸이 아닌 것을 빼보겠습니다.

몸에서 흙의 모습을 빼 봅니다.
몸에서 물의 모습을 빼 봅니다.
몸에서 따뜻함을 빼 봅니다.
몸에서 허공의 모습을 빼봅니다.
무엇이 남을까요?
흙도 물도 따뜻함과 허공도 나의 몸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나의 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내가 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몸을 나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나레이션: 묘희스님

[월간 지심] 유리병 속의 새를 꺼내는 방법

‘입이 작고 긴 유리병 안에 어린 새가 들어있다. 새는 자랐고, 몸집이 커진 새를 꺼내지 않는다면 새는 곧 죽게 된다. 이때, 유리병도 깨지 않고, 새도 다치지 않게 꺼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답이 있으니 물어봤겠지만, 저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예부터 내려오던 화두 중 하나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모든 고민의 원인

 

중생의 고민이란 바로 이렇게 상상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가장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자의 마음속 문제가 실제로 있는 것인가?’이다. 있지 않은 일을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그 생각에 대하여 고민한다면 그것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유리병 속에서 새가 자랄 수는 없다. 단지 상상하는 것이다. 이 세상 전체는 오직 스스로의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찰나에 사라져 기억이 되고, 기억은 있는 듯 느껴질 뿐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 사라진 시간 속에 있는 신기루와 같은 사연, 즉 추억들은 꿈속의 일과 같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유리병이란 기억을, 새란 기억 속에 갇혀 있는 추억을 말함이다. 추억이 아무리 심각한 의미를 가졌어도 그것은 단지 추억일 뿐이다. 상상 속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하지 말고 상상 자체가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상상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문제는 해결할 것도 아닌 것이 된다.

모든 중생의 고민도 그와 같다. 시간이란 찰나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며 그 시간 속에 있는 일체 만유도 역시 찰나마다 변하여 사라지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깨달음을 찾으려는 그 마음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참다운 마음을 찾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룰 수 없는 어리석은 주문이다. 마음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을 잘 때는 잔다고 하는 마음도 없으며 마음이 없다는 생각도 없다. 그러나 꿈이 꾸어지면 마음이 살아나고 ‘나’ 도 생겨나며, 꿈속의 세상이 따로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의미도 살아나 쫓고 쫓기게 된다. 그러다 꿈이 사라지면 역시 ‘나’도 사라지고 의미도 사라지며 사라졌다는 생각도 사라진다.

이것이 마음의 실체다. 몸이 있으면 마음도 있는 듯 나타나고 꿈이 꾸어져도 마음이 있는 듯 나타나지만, 마음의 대상이 없어지면 마음이라는 것도 역시 사라져 깊은 수면에 빠진 것과 다름없으니 이것이 실제의 마음이며 실제의 ‘나’이다.

그러니 찾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미 실제의 마음이 아닌 것이고 또 절대 찾을 수도 없는 것이 이치(理致)다. 이것이 무심(無心)의 실체 이니 단지 생각이 생겨나기 이전의 마음을 가리킬 뿐이다. 생각은 생겨났으니 사라지겠지만 사라지고 남은 무심은 사라질 수도 없는 마음이다. 그러니 사라지지 않는 마음으로부터 인연 따라 꿈처럼 드러나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며 윤회하는‘ 나’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 꿈과 같이 언제나 생겨날 마음이고 몸이며 세상인데, 어찌 두려움에 떨며 살 수 있겠는가. 없던 마음에서 생겨난 슬픈 마음이나, 기쁜 마음이나, 걱정하는 마음이나, 죽을까 봐 겁을 먹은 마음이나, 남이 있다고 믿는 마음이나, 내가 있다고 믿는 마음이나 모두가 꿈과 같고 신기루와 같은 ‘무심의 변화’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마음이 쉴 수 있게 되며 이것을 해탈(解脫)했다고 말하니, ‘유리병 속의 새’를 생각하는 마음이 본래부터 있었던 생각이 아니었고, 그 생각이 아니었다면 이미 불편해질 필요도 없는 것이 본래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미 여러 글을 통해 허공에서 비롯된 이 세상이 실감 나게 느껴지게 되는 이치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허공 속의 수소와 허공 속의 산소가 합해진다 해도 역시 허공일 뿐이지만 물로 느껴지게 되는 이유는 전생부터 가져온 업의 안경인 감각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생의 감각에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지 물이란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물을 느끼던 감각도 물이 없으면 함께 사라지고 마니, 마치 꿈이 있으면 내가 있고 꿈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관계와 같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눈도 필요 없고 귀도 필요 없으며 다른 감각기관들의 존재도 알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꿈속의 모든 것이 나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것과 같이 역시 세상인 유리병이나 새도 스스로의 정신에만 있을 뿐, 자기의 정신을 제(除)하고 나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생각일 뿐이다. 생각은 잡을 수 없는 환상이며 환상은 본래 무심에서 인연 따라 생겨난 꿈과 같다.

그러므로 생각의 허망함을 알면 ‘무아(無我)’라는 말도 깨닫게 되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이 본래의 자기 모습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니 그 로써 모든 숙제가 풀려 인생의 고통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각스님, 『불멸(영원한 지금의 메시지)』 도서출판 지혜의눈, 2014 개정판

[월간 지심]염화미소 (이각큰스님 어록) ; 지구의 무게

 염화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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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큰스님 어록

스승이 물었다.
– 지구의 무게가 얼마나 될까?

– 제자가 답했다.
– 엄청나지 않겠습니까?
스승이 말했다.
– 지구의 무게는 없다. 허공에 떠 있지 않느냐.

 

 

이 글은 2015년 1월  <월간 지심 17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계간 지심

[월간 지심] 방등스님의 일필휘지 붓글씨

적멸
방등스님의 친필 붓글씨

 

만약 귀 자체에 소리가 있다면 이명(耳鳴), 또는 난청(難聽)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고,

그렇다면 귀 바깥의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정상적인 귀에는 소리가 없다.

적멸(寂滅)한 채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근은 청정(淸淨)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변화가 없으니

상주(常住), 즉 항상 머문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불멸1』 중에서 이각스님 著

이 글은 2015년 지심 회지 1월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계간 지심

상주교도소 법회를 봉행하였습니다

지난 4월 5일 오후 3시 상주교도소 법회를 봉행하였습니다.

참석자는 월가스님, 행자님이었으며 80여명의 재소자가 참석하여 법문을 들었습니다.

다음 법회는 4월 19일 청송교도소 법회입니다. 참석을 원하시거나 교도소 떡보시를 원하시는 분은 종무소(054-541-2057)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