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사형수다. 즉 태어난 육신은 소멸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회피하고 육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열심히 무엇인가에 의미를 두고 살아 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옴을 느낄 때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죽음의 두려움을 마음 속에 안고 하루하루 갈등 속에서 살게 된다. 그 중에 한 부류가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다. 소승은 속세의 인연으로 암 전문 요양병원의 원장으로 진료를 하게 되면 서 70여분의 암 환우들과 같이 생활하게 되었고, 암 환우들과의 상담을 통해서 느낀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암 환우들이 가지는 심리 상태의 흐름이다. 일단 암 진단을 받으면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암의 원인과 치료법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공식적인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로 인식한다.

물론 다행히 초기에 진단이 되면 치료가 용이하지 만 일반적으로 암이라는 말 속에 이미 죽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여 받아 들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암 진단을 받은 환우들의 공통적인 처음의 심리상태는 “이렇게 암이 걸릴 줄 알았다면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을….” 이라는 지난 날들에 대한 후회이다.

그렇다고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는 정답도 없이 무언가 답은 모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자신의 삶에 대한 막연한 후회다. 그렇다면 죽을 때도 결국 이렇게 자신의 삶을 후회하리라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렇게 후회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어쩔 수 없어” 라는 식으로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시기가 된다. 생멸법칙으로 이루어진 물질의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서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죽음 후의 일을 알 수 없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데 “자식도 잘 키우고 사회적으로 성공도 했으니 이만 하면 잘 살았지.” 라며 자기 위안을 한다. 물론 걔중에는 삶의 후회나 무기력보다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분들은 아마도 불도를 닦지 않았어도 순리에 따르는 생활을 했을 것이다.

이런 무기력한 시기가 지나면 다음으로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심리상태가 나뉜다.

첫 번째는 적극적으로 암을 이겨내려고 하는 부류다. 그동안의 생활 패턴을 바꾸고 운동도 하고 의사의 지시사항을 잘 이행하며 나름대로 암에 대하여 공부도 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적극적인 투병생활로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두 번째는 모든 문명적인 사회 생활을 접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사는 부류다.

세 번째는 의학적인 치료를 포기 하고 종교에 귀의하여 오로지 종교적인 힘으로 극복하려는 부류도 있다.

네 번째는 무기력하게 자신의 삶을 후회하면서 계속 악화되어 삶을 포기 하는 경우이다. 위에 열거한 것보다 세밀하게 보면 더 다양하게 나눌 수 있지만 어떠한 경우가 됐든 삶 자체의 실상을 모르니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다. 즉 열심히 노력해서 암을 극복해서 건강을 찾았다 해도 결국 죽음의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약간의 시간만 연장한 것이고, 산 속으로 들어가 자연인의 삶을 산다고 해도 결국은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종교에 귀의한다고 올바른 해답을 주는 곳을 찾는다는 보장도 없고,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무기력과 두려움으로 맞이 하는 다음 생은 어찌할 것인가?

암 환우들의 심리 상태는 크게 위의 네 가지 모습으로 나뉜다. 그러나 암 환우들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위와 같은 심리상태를 느끼게 될 것이고 아무런 해답도 없이 육체의 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육체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현상 중 단 하나도 정신과 관계 없이 일어나는 것은 없다. 음식을 먹고 소화액이 분비되는 현상도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 같지만 정신이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 반증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가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정신과 상관없이 소화액이 저절로 분비된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소화불량이 생기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렇듯 육체와 정신이 불가분의 관계라면 암도 당연히 정신적인 어떤 상황과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암세포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정상세포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약의 부작용 중의 하나가 인체의 정상 세포 중에서 성장속도가 빠른 백혈구 세포, 점막 세포를 파괴해서 면역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두피세포나 입 위 점막세포의 파괴로 머리가 빠지고 입이 헐어서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성장이 빠른 세포가 몸에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신적인 면으로 보면 당연히 성급한 생각 때문이다.

암 환우들의 심리상태와 암의 원인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았는데 그렇다면 우리 도반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암에 걸리지 않고 혹여 암에 걸린다 하더라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금강경에 “부주색성향미촉법”이라는 법문이 나온다. 육진(색성향미촉법)은 머물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삶속에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지만 우리가 삶을 누리고 있는 이곳은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금계의 법칙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이 “부주색성향미촉법”이라는 법문의 뜻이다. 우리가 노력해서 이루려고 하는 것은 명예, 권력, 사랑, 돈 등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분해해보면 육진(색성향미촉법)의 범위를 벗어날 수 가 없다. 그런데 육진이 머물 수가 없는 것이라면 육진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그 어떤 것도 머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찰나에 사라지는 것이 이곳의 실상일진데 무엇이 이루어지겠는가?

이러함을 모르고 무언가를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의 부산물 중 하나가 암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암도 분해해보면 육진으로 이루어졌으니 암 또한 머물지 못할 것이다. 매 찰나 머물지 못하고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반짝이며 생멸하는 것을 기억이라는 정신의 능력으로 모자이크해서 인생이라는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그것이 실제로 있다고 착각하여 좋은 것은 얻으려 하고 싫은 것은 버리려 하는 어리석음으로 삶을 사는 것이 중생이고 “부주색성향미촉법”의 법칙을 신해수지(이해하여 믿고 받아들여 지닌다.)하여 그 견해로 찰나의 삶을 즐기는 것이 수행자의 삶이니 우리 도반들은 부처님 제자로 불법을 수행하는 수행자의 삶을 삶으로써 극락을 누리는 것이 도각사를 통해서 불법을 공부하는 참된 이익이 아닌가 한다.

불몽스님 한의학칼럼, 계간지심 21호

댓글 남기기

Close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