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아무것도 잡지 않고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 연습을 합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명상을 함께 해보겠습니다.
명확히 세상을 보고 있지만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평안함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조용한 방에 앉아 눈을 감고 가만히 상상해봅니다.

넓고 평평한 땅이 있습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너른 벌판 위에 돌로 지어진 성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높은 벽으로 둘러쳐진 성의 남쪽에는 출입할 수 있는 좁은 문이 단 하나만 있습니다.
그 성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은 그 작은 문을 지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벽 위에는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있으니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높은 성벽 위에서 저 아래 문을 통해 일렬로 출입하는 백성들의 머리를 내려다봅니다.
어린이, 노인, 병자, 장사치, 연인, 웃는 이와 우는 이, 화난 이와 미친 이, 소와 말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동물들이
천천히 문을 통과하여 들어오거나 나갑니다.

당신에게는 그들을 막거나 내쫓을 권한이 없습니다.
그저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나른한 오후입니다.
발아래 저 멀리서 백성들의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기는 하지만
자세히 알아들을 수는 없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당신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양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 명상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봅니다.

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나”라는 정신입니다.
그리고 높은 성벽에 나있는 하나의 문은 당신의 생각들이 드나드는 문입니다.
그곳을 드나드는 수많은 백성과 동물은 당신의 생각들입니다.
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문지기는 바로 지금 당신의 견해, 즉 관찰자입니다.

당신은 차례대로 출입하는 생각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양과 이름을 알고는 있지만
그들을 막거나 내쫓을 권한은 없습니다.
그저 생각이 들어오고 생각이 나가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생각이 무어라 말하는지는 명확히 들리지 않습니다.

당신은 드나드는 생각들과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기만 할 뿐입니다.

보만스님, 티끌파헤치기, 2016-여름 계간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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