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작고 긴 유리병 안에 어린 새가 들어있다. 새는 자랐고, 몸집이 커진 새를 꺼내지 않는다면 새는 곧 죽게 된다. 이때, 유리병도 깨지 않고, 새도 다치지 않게 꺼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답이 있으니 물어봤겠지만, 저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예부터 내려오던 화두 중 하나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모든 고민의 원인

중생의 고민이란 바로 이렇게 상상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가장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자의 마음속 문제가 실제로 있는 것인가?’이다. 있지 않은 일을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그 생각에 대하여 고민한다면 그것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유리병 속에서 새가 자랄 수는 없다. 단지 상상하는 것이다. 이 세상 전체는 오직 스스로의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찰나에 사라져 기억이 되고, 기억은 있는 듯 느껴질 뿐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 사라진 시간 속에 있는 신기루와 같은 사연, 즉 추억들은 꿈속의 일과 같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유리병이란 기억을, 새란 기억 속에 갇혀 있는 추억을 말함이다. 추억이 아무리 심각한 의미를 가졌어도 그것은 단지 추억일 뿐이다. 상상 속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하지 말고 상상 자체가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상상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문제는 해결할 것도 아닌 것이 된다.

모든 중생의 고민도 그와 같다. 시간이란 찰나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며 그 시간 속에 있는 일체 만유도 역시 찰나마다 변하여 사라지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깨달음을 찾으려는 그 마음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참다운 마음을 찾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룰 수 없는 어리석은 주문이다. 마음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을 잘 때는 잔다고 하는 마음도 없으며 마음이 없다는 생각도 없다. 그러나 꿈이 꾸어지면 마음이 살아나고 ‘나’ 도 생겨나며, 꿈속의 세상이 따로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의미도 살아나 쫓고 쫓기게 된다. 그러다 꿈이 사라지면 역시 ‘나’도 사라지고 의미도 사라지며 사라졌다는 생각도 사라진다.

이것이 마음의 실체다. 몸이 있으면 마음도 있는 듯 나타나고 꿈이 꾸어져도 마음이 있는 듯 나타나지만, 마음의 대상이 없어지면 마음이라는 것도 역시 사라져 깊은 수면에 빠진 것과 다름없으니 이것이 실제의 마음이며 실제의 ‘나’이다.

그러니 찾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미 실제의 마음이 아닌 것이고 또 절대 찾을 수도 없는 것이 이치(理致)다. 이것이 무심(無心)의 실체 이니 단지 생각이 생겨나기 이전의 마음을 가리킬 뿐이다. 생각은 생겨났으니 사라지겠지만 사라지고 남은 무심은 사라질 수도 없는 마음이다. 그러니 사라지지 않는 마음으로부터 인연 따라 꿈처럼 드러나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며 윤회하는‘ 나’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 꿈과 같이 언제나 생겨날 마음이고 몸이며 세상인데, 어찌 두려움에 떨며 살 수 있겠는가. 없던 마음에서 생겨난 슬픈 마음이나, 기쁜 마음이나, 걱정하는 마음이나, 죽을까 봐 겁을 먹은 마음이나, 남이 있다고 믿는 마음이나, 내가 있다고 믿는 마음이나 모두가 꿈과 같고 신기루와 같은 ‘무심의 변화’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마음이 쉴 수 있게 되며 이것을 해탈(解脫)했다고 말하니, ‘유리병 속의 새’를 생각하는 마음이 본래부터 있었던 생각이 아니었고, 그 생각이 아니었다면 이미 불편해질 필요도 없는 것이 본래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미 여러 글을 통해 허공에서 비롯된 이 세상이 실감 나게 느껴지게 되는 이치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허공 속의 수소와 허공 속의 산소가 합해진다 해도 역시 허공일 뿐이지만 물로 느껴지게 되는 이유는 전생부터 가져온 업의 안경인 감각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생의 감각에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지 물이란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물을 느끼던 감각도 물이 없으면 함께 사라지고 마니, 마치 꿈이 있으면 내가 있고 꿈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관계와 같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눈도 필요 없고 귀도 필요 없으며 다른 감각기관들의 존재도 알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꿈속의 모든 것이 나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것과 같이 역시 세상인 유리병이나 새도 스스로의 정신에만 있을 뿐, 자기의 정신을 제(除)하고 나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생각일 뿐이다. 생각은 잡을 수 없는 환상이며 환상은 본래 무심에서 인연 따라 생겨난 꿈과 같다.

그러므로 생각의 허망함을 알면 ‘무아(無我)’라는 말도 깨닫게 되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이 본래의 자기 모습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니 그 로써 모든 숙제가 풀려 인생의 고통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각스님, 『불멸(영원한 지금의 메시지)』 도서출판 지혜의눈, 2014 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