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빼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지나간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하곤 합니다. 자동차 사고에 대한 기억, 이별에 대한 기억, 시험에 대한 기억, 창피를 당하거나 모욕을 당했던 기억 등 이미 시간과 함께 지나가 사라져버린 일인데도 그 기억의 지배를 받게 되어 속박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흔히 트라우마(Trauma)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이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실습해보겠습니다.

먼저 조용한 곳에 허리를 곧게 펴고 편안한 자세로 앉습니다.
반가부좌가 가장 적당하겠습니다.
편안히 호흡하며 이제 생각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우선 이 자리에 앉던 방금 전의 시간을 생각해봅니다.
좌복을 반듯하게 놓고 당신은 편안히 앉았습니다.
그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 시간의 당신은 어디로 갔을까요.

이제 조금 더 앞선 시간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자리에 앉기 전,
이 방에 들어오는 당신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상상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봅니다.
그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 시간의 당신은 어디로 갔을까요.

점점 더 앞선 시간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당신의 어제를 떠올려봅니다.
당신의 일주일 전을 떠올려봅니다.
당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려봅니다.
당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려봅니다.

그 모든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 시간의 당신은 어디로 갔을까요.

이제 천천히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사라지고 있음을 관합니다.
이 순간의 내 모습도 사라지고 있음을 관합니다.
매 순간 새로운 내가 생겨나고 있음을 관합니다.
과거의 모든 기억과 사연들이 이미 사라졌음을 관합니다.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당신의 정신은
시간을 초월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모든 시간과 기억을 바라보는 관찰자일 뿐,
그 시간과 기억과는 관계가 없음을 자세히 살핍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은 사라졌음을 쉽게 인정하지만,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은 쉽게 무시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적으로 과거로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다시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은 1초 전과 10년 전이 똑같습니다. 10년 전의 일은 쉽게 놓으면서 1초 전의 일은 그렇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어떤 무명 때문일까요.

-계간지심 26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계간 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