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심 31호]캘리그라피 바탕화면

<심각하면 속은 거다>

지심지 편집장이신 화현스님께서 직접 제작하신 바탕화면을 무료 공개합니다.

아래의 사진을 누르시면 모바일과 데스크탑에서 사용 가능한 <캘리그라피 배경화면>을 다운로드 할 수 있습니다.

계간지심 바탕화면_ 진지하면 속은거다
해상도 2560 x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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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지심] 캘리그라피 바탕화면

지심지 편집장이신 화현스님께서 직접 제작하신 바탕화면을 무료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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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용

1080 x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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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탑용

1920 x 1080

 

2560 x 1600

[계간 지심] 10분 사유 – 부동의 사유

명상은 모든 생각이 고요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명상은 올바른 사유를 통해 가능합니다.
사유는 명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불경은 명상으로 통하는 사유법이 가득합니다.
명상에 이르는 불경 속 10분간의 사유법을 소개합니다.

부동의 사유

며칠 전 봄비가 꽤 많이 내리면서 겨우내 가문 땅을 시원하게 적셔주었습니다. 밤새 비가 내리며 제법 장마 같은 분위기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꽈광. 저 멀리 어딘가에서 묵직한 천둥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때 스승님께서 알려주신 사유법이 조용히 떠올랐습니다.

이번 사유법은 고요한 방에 앉아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걸어 다니며, 운전을 하며, 밥을 먹으면서도 잊지 않고 있다면 반드시 거대한 내 정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준비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 시작해볼까요.

 

햇볕이 따뜻해진 봄날 혼자 걸어봅니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누구나 ‘내가 걷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작은 존재가 지구라는 큰 땅 위를 조금씩 걸어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여기”라는 장소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서울타워에서도, 대관령에서도, 남해의 이름모를 섬에서도 나는 언제나 “여기”였습니다.

내 앞의 세상은 바뀌지만, 내가 있는 여기라는 장소는 변하지 않는다면 과연 내가 걷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세상이 내게 다가오고 있는 걸까요.

하늘을 보면 하늘 끝까지, 천둥소리를 들으면 천둥이 시작된 그 높은 구름까지, 내 정신은 허공을 가득 채운 채 닿아있습니다.

어느 방향인지,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가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습니다. 내 정신 바깥의 일은 느낄 수가 없으니 세상의 모든 현상은 내 정신 속의 일입니다.

걸으면 세상이 다가오고,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는 내 정신 안에 있습니다.세상은 내가 깨어있는 지금 이 순간, 내 정신 속에 들어와있고 그 정신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었습니다.

[계간 지심] 10분 사유- 화롯불 사유법

 

화롯불 사유법

 

명상은 모든 생각이 고요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명상은 올바른 사유를 통해 가능합니다.
사유는 명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불경은 명상으로 통하는 사유법이 가득합니다.
명상에 이르는 불경 속 10분간의 사유법을 소개합니다.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부는 어느날,
보일러에 장작을 넣다가 스승님께서 알려주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사유법 한 가지를 여러분께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준비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상상력만 필요합니다.
눈을 감고 제 이야기를 따라 가만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자,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지금 눈이 내리는 마당에 나와 있습니다.
나는 바람 한 점도 없이 소복이 쌓이고 있는 눈을 바라봅니다.
내 앞에는 빨갛게 달아오른 숯불이 담긴 작은 화로가 있습니다.
화로 가운데 잘 피어있는 숯불에서 뜨거운 아지랑이가 오릅니다.

 

하늘에서 눈은 쉬지 않고 내립니다.
소리 없이 떨어지는 작고 가벼운 눈송이는
뜨거운 화로의 숯불 위에도 내려앉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뜨거운 열기로 인해 눈은 숯불에 닿기도 전에 수증기로 변해 사라집니다.
나는 숯불 위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그리고 족족이 사라지고 있는 눈송이를 바라봅니다.
눈송이는 영원히 숯불에 닿을 수 없습니다.

 

타오르는 숯불은 바로 지금이라는 이 순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숯불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는 우리의 생각들입니다.
우리의 생각들은 화로를 향해 떨어지는 눈송이처럼
지금이라는 이 순간을 향해 끝없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은 한 찰나도 머물러 있지 못합니다.
생각이 내려앉을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지만,
지금은 매 찰나 과거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순간 나의 생각들은
과연 지금이라는 시간에 닿을 수 있을까요?
혹시 숯불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는 눈송이처럼
생각은 지금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내 생각을 붙잡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요?

 

머리가 아프다는 생각도, 하늘이 파랗다는 생각도,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도
모두 지금이라는 이 순간 위로 떨어지고 있지만,
한 번도 우리의 생각은 지금에 닿은 적이 없이
벌써. 이미. 과거로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내 생각은 언제 존재하는 걸까요?
생각이 정말 내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저 나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 사유법은 생각의 사연 속에서 벗어나
어떤 생각이든 찰나에 사라지고 있다는 무상법無常法을 증명하는 관법觀法입니다.
짜증이 나거나 외롭고 슬플 때,
이 모든 생각은 화로에 떨어지기도 전에 사라져버리는 눈송이처럼,
나에게 닿기도 전에 이미 과거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관하여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행법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든 관법 하나로 완전한 자유와 평온을 되찾는 수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10분사유, 계간지심 29호

계간 지심

[계간 지심] 10분 사유 – 고속도로 사유법

명상은 모든 생각이 고요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명상은 올바른 사유를 통해 가능합니다.
사유는 명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불경은 명상으로 통하는 사유법이 가득합니다.
명상에 이르는 불경 속 10분간의 사유법을 소개합니다.

고속도로 사유법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많으시죠? 이번엔 차를 타고 이동하며 쉽게 할 수 있는 사유법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아무런 준비물도 필요없습니다. 차안에서 이 생각을 떠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먼저 차에 바르게 앉아 창문 밖을 바라봅니다. 나와 차가 함께 빠르게 달려나가는 상황을 느껴봅니다.

나무가 지나가고, 표지판이 지나가고 바람 소리가 들리고,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집니다. 내 앞의 세상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제 출발하기 전, 집에 있던 내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나무가 멈추어있고, 표지판도 제자리입니다.

문을 스치는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런 진동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 앞의 세상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지 않음을 느낍니다.

고속도로에서는 세상이 빠르게 지나가고 집에서는 세상이 느리게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 둘을 모두 알고 있는 이 정신은 고속도로 위에서도 집에서도 항상 이 자리에 있습니다.

언제나 여기에 있었습니다.

움직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정지해 있어야 내 앞의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속도로 위를 달린다는 생각은 육신을 나로 삼고 있는 착각은 아닐까요.

육신은 차에 올라 달리지만 내 정신은 언제나 여기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한 자리입니다.

이것이 움직임을 바라보며(無常法) 움직이지 않는 자리(常住法)를 확인하는 사유법입니다.

10분사유, 계간지심 28호

 

계간 지심

[계간 지심] 10분 사유 – 몸을 네 가지로 나누는 사유

명상은 모든 생각이 고요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명상은 올바른 사유를 통해 가능합니다.
사유는 명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불경은 명상으로 통하는 사유법이 가득합니다.
명상에 이르는 불경 속 10분 간의 사유법을 소개합니다.

 

현명한 왕이 지혜로운 수행자에게 묻습니다.
“내가 없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지혜로운 수행자가 다시 묻습니다.
“왕이시여, 왕께서는 이곳에 오실 때 무엇을 타고 오셨습니까?”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왕께서 타고 오신 수레에 대해 묻겠습니다. 바퀴가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바퀴 살이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바퀴와 바퀴를 연결하는 축이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말과 수레를 연결하는 가죽 끈이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수레에서 수레 아닌 것을 모두 빼면 무엇이 남습니까?”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수레입니까?”

우리의 몸을 이와 같이 사유해보겠습니다.
몸의 단단한 부분, 뼈, 손톱, 이빨, 머리카락 등은 흙으로 돌아가고,
피, 눈물, 오줌, 골수 등은 물로 돌아가고,체온은 따뜻한 기운으로 돌아가고,
몸 속에 남아있던 숨은 허공으로 돌아갑니다.
우리의 몸은 이렇게 흙과 물과 따뜻함과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 이제 우리의 몸에서 몸이 아닌 것을 빼보겠습니다.

몸에서 흙의 모습을 빼 봅니다.
몸에서 물의 모습을 빼 봅니다.
몸에서 따뜻함을 빼 봅니다.
몸에서 허공의 모습을 빼봅니다.
무엇이 남을까요?
흙도 물도 따뜻함과 허공도 나의 몸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나의 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내가 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몸을 나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나레이션: 묘희스님

[월간 지심] 유리병 속의 새를 꺼내는 방법

‘입이 작고 긴 유리병 안에 어린 새가 들어있다. 새는 자랐고, 몸집이 커진 새를 꺼내지 않는다면 새는 곧 죽게 된다. 이때, 유리병도 깨지 않고, 새도 다치지 않게 꺼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답이 있으니 물어봤겠지만, 저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예부터 내려오던 화두 중 하나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모든 고민의 원인

 

중생의 고민이란 바로 이렇게 상상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가장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자의 마음속 문제가 실제로 있는 것인가?’이다. 있지 않은 일을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그 생각에 대하여 고민한다면 그것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유리병 속에서 새가 자랄 수는 없다. 단지 상상하는 것이다. 이 세상 전체는 오직 스스로의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찰나에 사라져 기억이 되고, 기억은 있는 듯 느껴질 뿐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 사라진 시간 속에 있는 신기루와 같은 사연, 즉 추억들은 꿈속의 일과 같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유리병이란 기억을, 새란 기억 속에 갇혀 있는 추억을 말함이다. 추억이 아무리 심각한 의미를 가졌어도 그것은 단지 추억일 뿐이다. 상상 속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하지 말고 상상 자체가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상상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문제는 해결할 것도 아닌 것이 된다.

모든 중생의 고민도 그와 같다. 시간이란 찰나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며 그 시간 속에 있는 일체 만유도 역시 찰나마다 변하여 사라지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깨달음을 찾으려는 그 마음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참다운 마음을 찾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룰 수 없는 어리석은 주문이다. 마음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을 잘 때는 잔다고 하는 마음도 없으며 마음이 없다는 생각도 없다. 그러나 꿈이 꾸어지면 마음이 살아나고 ‘나’ 도 생겨나며, 꿈속의 세상이 따로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의미도 살아나 쫓고 쫓기게 된다. 그러다 꿈이 사라지면 역시 ‘나’도 사라지고 의미도 사라지며 사라졌다는 생각도 사라진다.

이것이 마음의 실체다. 몸이 있으면 마음도 있는 듯 나타나고 꿈이 꾸어져도 마음이 있는 듯 나타나지만, 마음의 대상이 없어지면 마음이라는 것도 역시 사라져 깊은 수면에 빠진 것과 다름없으니 이것이 실제의 마음이며 실제의 ‘나’이다.

그러니 찾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미 실제의 마음이 아닌 것이고 또 절대 찾을 수도 없는 것이 이치(理致)다. 이것이 무심(無心)의 실체 이니 단지 생각이 생겨나기 이전의 마음을 가리킬 뿐이다. 생각은 생겨났으니 사라지겠지만 사라지고 남은 무심은 사라질 수도 없는 마음이다. 그러니 사라지지 않는 마음으로부터 인연 따라 꿈처럼 드러나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며 윤회하는‘ 나’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 꿈과 같이 언제나 생겨날 마음이고 몸이며 세상인데, 어찌 두려움에 떨며 살 수 있겠는가. 없던 마음에서 생겨난 슬픈 마음이나, 기쁜 마음이나, 걱정하는 마음이나, 죽을까 봐 겁을 먹은 마음이나, 남이 있다고 믿는 마음이나, 내가 있다고 믿는 마음이나 모두가 꿈과 같고 신기루와 같은 ‘무심의 변화’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마음이 쉴 수 있게 되며 이것을 해탈(解脫)했다고 말하니, ‘유리병 속의 새’를 생각하는 마음이 본래부터 있었던 생각이 아니었고, 그 생각이 아니었다면 이미 불편해질 필요도 없는 것이 본래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미 여러 글을 통해 허공에서 비롯된 이 세상이 실감 나게 느껴지게 되는 이치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허공 속의 수소와 허공 속의 산소가 합해진다 해도 역시 허공일 뿐이지만 물로 느껴지게 되는 이유는 전생부터 가져온 업의 안경인 감각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생의 감각에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지 물이란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물을 느끼던 감각도 물이 없으면 함께 사라지고 마니, 마치 꿈이 있으면 내가 있고 꿈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관계와 같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눈도 필요 없고 귀도 필요 없으며 다른 감각기관들의 존재도 알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꿈속의 모든 것이 나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것과 같이 역시 세상인 유리병이나 새도 스스로의 정신에만 있을 뿐, 자기의 정신을 제(除)하고 나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생각일 뿐이다. 생각은 잡을 수 없는 환상이며 환상은 본래 무심에서 인연 따라 생겨난 꿈과 같다.

그러므로 생각의 허망함을 알면 ‘무아(無我)’라는 말도 깨닫게 되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이 본래의 자기 모습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니 그 로써 모든 숙제가 풀려 인생의 고통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각스님, 『불멸(영원한 지금의 메시지)』 도서출판 지혜의눈, 2014 개정판

[월간 지심]염화미소 (이각큰스님 어록) ; 지구의 무게

 염화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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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큰스님 어록

스승이 물었다.
– 지구의 무게가 얼마나 될까?

– 제자가 답했다.
– 엄청나지 않겠습니까?
스승이 말했다.
– 지구의 무게는 없다. 허공에 떠 있지 않느냐.

 

 

이 글은 2015년 1월  <월간 지심 17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계간 지심

[월간 지심] 방등스님의 일필휘지 붓글씨

적멸
방등스님의 친필 붓글씨

 

만약 귀 자체에 소리가 있다면 이명(耳鳴), 또는 난청(難聽)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고,

그렇다면 귀 바깥의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정상적인 귀에는 소리가 없다.

적멸(寂滅)한 채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근은 청정(淸淨)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변화가 없으니

상주(常住), 즉 항상 머문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불멸1』 중에서 이각스님 著

이 글은 2015년 지심 회지 1월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계간 지심